PAST

2024. 2. 16 - 3. 30
TAKERU AMANO 개인전
Shy Madness_Relentless determination

 

Venus, acrylic on canvas, 2023, 100x100

 

독보적인 색채감과 그림체로 미래적 예술 트랜드를 선도하는 아마노 타케루는 새로운 차원의 인물 캐릭터로 현실과 상상을 연결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네오팝 아티스트이다.

자연과 기술,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유니크한 비전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이며 전통적인 미술의 아이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상을 단순하고 효과적인 형태로 표현해 캐릭터적인 인물에 동시대의 인간상을 담아낸다.


가볍게 소화·소비되는 예술

밝은 원색들로 구성된 아크릴화의 정물과 인물화, 종이 위와 벽면에 에어 스프레이로 드로잉 된 작업들, 간혹 보이는 반추상의 풍경화 등 간결한 점과 선으로 이루어져 시각적으로 명쾌하고 시원하게 환기시켜주는 일본의 네오 팝 아티스트 타케루 아마노의 작품들이다. 선과 색이 간결하고 명확해서 시야로 들어오는 정보는 빠르게 소화가 된다. 예술작품에 시선을 두고 사유하며 머무르는 소위 예술 작품 감상의 습관상 관례적인 예禮의 시간이 있어 작품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곱씹으려 작품 속 인물과 정물의 태態를 따라 시선을 옮기며 상념에 잠기고싶지만 여전히 그보다 빠르게 인지되며 그 속도는 낯설기도 하다. 작품을 관람하는 일종의 이러한 전통적 습관은 타케루 아마노와 같은 네오 팝 아티스트의 작품을 대할 때면 가볍지 않은 마찰로 인한 스파크가 인다.

예술가가 되기까지의 그의 행보를 소환해 보면 그의 작품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가족 모두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 집안이었기에 유년 시절 미술학교를 진학할 필요가 없었고, 20세에 비로소 그림을 배우기 위해 안착했던 뉴욕은 당시 문화의 중심지인 핫플레이스였다. 어렸을 때 도쿄의 어느 백화점에서 목격한 키스 해링의 작품에 영감을 받았고, 성인이 된 후에는 뉴욕에서의 판화와 스트리트 아트에 매료되었으며, 작가의 유년 시절인 20세기 말 당대 일본은 만화, 애니메이션, TV 게임 등 서브컬쳐들이 본격적으로 생성된 시기를 몸으로 겪으며 흡수된 그의 삶과 형성된 예술관은 그의 작품으로 즉발적이면서 간결하고 투명하게 교감이 된다. 2000년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디자이너로서 아티스트들의 자켓을 만들기도 하고 의류 브랜드와 협업을 이어간다. 최종 목적인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위해 진행해 온 다양한 스펙트럼의 활동 영역을 점차 간추려 왔고 현재는 아티스트로서 조각, 회화, 아트 토이, NFT 등 여전히 넓은 영역을 횡단하며 활보하고 있다.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을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간소화하고 제해 왔다고 말하는 그의 행보는 어쩌면 모든 여정이 그의 최종 목표인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과정이자 다시 어느 매체든 협업과 결합이 가능한 에너지를 모으고 다진 과정으로도 보인다. 전통적 예술가로서의 기준으로 보면 화려하고 입체적이며 다채로운 그의 활동내역은 유연한 보호색을 입고 변신하는 듯 보이지만 차차 그 중심은 철저히 작가 자신에게로 가져온 듯싶다.

 

“흑과 백, 여자와 남자, 속하고 속하지 않는, 페인팅에서 프린트까지, 조각하고 디자인하는 것, 섬세한 힘, 삶의 다양한 분야로부터의 시각을 가진 예술가적 마인드”

Black and white, woman and man, belong and not of belongs and not, from painting and printing, to sculpting and designing, delicate in might, an artistic mind with a following of eyes from various field of life.

-타케루 아마노-

 

네오 팝의 무게

현대 일본 미술계는 화사하고 산뜻하며 재기발랄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판타지가 펼쳐진 네오 팝 아트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듯 보인다. 팝아트인지 애니메이션인지의 경계가 모호한 것도 일본 시각예술의 하나의 경향으로 간주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96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등장한 팝아트가 만화, 상업디자인, 영화의 스틸 등 반反예술을 지향하고 매스 미디어의 이미지를 적극 차용해 이를 주제로 삼았고, 1990년대로 계보가 이어진 네오 팝 아트는 사와라기 노이椹木野衣에 의해 개념이 정의된다.

 

“네오 팝 이라는 경향은(…) 1990년대 초반 모노物派하를 중심으로 논의돼 온 현대미술과 크게 일탈하는 작가군이 옛날의 미래파나 다다를 상기시키는 파괴적인 열기와 함께 등장한(…)아트와 오타쿠 문화의 하이브리드이다.”

-사와라기 노이, ‘네오 팝의 기원’ 강좌에서-

 

사실 국제적으로 묵직하게 영향력이 있었던 일본의 모노物派파와 구타이具體派의 흐름은 1990년대 신선하고 상큼하게 등장한 네오 팝의 화려함 속에 묻힌 듯 보였고 개연성 없이 급박하게 상황이 전복된 듯 보여 일본 시각예술은 기이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구타이에서 모노파로 이어지는 흐름 이면에-생성된 후 사라져 버린-일본 전후 미술의 프로파간다 회화와 미래 예술이 깊이 잠복되어 있다가 만화와 애니메이션, 영화특수 촬영 등과 같은 오타쿠 문화, 서브 컬쳐 문화 속으로 유입된 것이 비로소 1990년대 네오 팝으로 분출된 것이라고 사와라기 노이는 말한다. 결국 지금 일본 현대 시각예술을 풍미하고 있는 네오 팝의 경향은 난데없이 등장한 힙한 트렌드 정도가 아닌 깊숙이 내재해 흘러왔던 일본의 정신이 199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들의 조형 언어로 발현된 것이라고 해야 적합할 것이다.

일본의 대중문화 서브컬쳐(하위문화)는 주류문화의 곁다리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며, 소수 문화를 다양하게 인정하는 분위기 안에서 다양하게 존속과 유지가 가능해 왔다. 고급에 반하는 저급문화가 아니며 주류에 반하는 하위문화의 개념이 아닌 서브컬쳐는 독립적 힘을 지니며 명확히 구분된다. 사회의 위계질서와 예의가 중요한 사회적 분위기는 돌출행위나 일탈적 극단 행동에는 제재를 가하지만 반면 다양한 개성들이 허용된 영역안에서는 모두 공존하도록 관대하기에 개개인들은 내밀하게 스스로 파고든다. 질서가 깨지지 않는 영역 안에서 무한한 다양성이 공존하며 ‘마니아’와 ‘오타쿠おたく’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성되어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1980년대 들어서 일본은 전후 최고조의 물질 풍요와 다양한 문화에 노출되며 가정에서 소외된 아이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만한 애착물을 만들어 애정을 쏟는다. 이런 상황에서 생성된 ‘오타쿠’는 내향적 몰입력이 강력하며 이들이 성장하면서 경제·문화를 창출하는 권력을 지니게 되어 부富로 연결되는 새로운 지식층으로 부각된 것이며, 이들은 일본의 문화 경쟁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일본 네오 팝에 내재된 애수미, 관능적 사랑, 괴기스러움, 죽음의 미학, 귀여움 등은 자연환경과 지리적 특성 그리고 역사적 상황 속에서 내재된 일본만의 정신이 응축되고 함축되어 생산된 결정체일 것이다. 서구에서 발생해 각 지역에서 파편화되어 심어져 발현된 로컬 팝아트인 셈이다. 네오 팝은 서브컬쳐를 작품에 자연스럽게 끌어들인 1990년대 이후 시각예술이자 일본 현대 미술을 상징한다.

 

‘성스럽지 않은’, ‘나만의 귀여운’ 비너스

광신자를 뜻하는 ‘fanatic’의 ‘fan’과 ‘영지領地 또는 나라’를 뜻하는 접미사 ‘dom’의 합성어로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거나 몰입하여 빠져드는 사람을 지칭하는 ‘팬덤fandom’은 타케루 아마노의 작업에서 언급할 수 있는 네오 팝 아트의 요소 중 하나이다. 거룩하고 신성시 되어온 비너스는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품은 신화 속 인물로 중요한 예술가들에 의해 성스럽게 재현되어 왔다. 시선맞춤 없이 비현실적 인체의 조화와 표정으로 존재해왔던 비너스는 타케루 아마노에 의해 깨끗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우리를 또렷하게 쳐다보고 있다. 비너스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예술의 기원으로 올라가면 공공장소지만 은밀한 공간에 눈에 보인대로 재현한 이미지에 상당 수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동감했으며 소통 했을 것이며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의미를 넘어서 그 형상에 간절한 바람과 희망을 넣게 되었고 많은 사람과 깊은 염원이 이미지에 보태어질수록 보고 믿는자들에게 강한 세례를 주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듯 했을 것이다. 종국엔 그 형상은 그것이 어떤 것을 재현했는가는 더 이상 무의미한 지경으로 올라가 하나의 아이콘(상징)이 된다. 세상에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미美적인 모든 요소를 담아 범접할 수 없는 우아함으로 유일했던 비너스는 타케루 아마노의 각각 작품 안에 모셔둔 비너스들로 변모해 우리에게 직접 눈을 맞추며 보는 이와만의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비너스가 누구를 상징하는지에 관한 여타 많은 궁금증에 대해 타케루 아마노는 가능한한 모든 메시지를 배제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의 작업에 있어 ‘팬덤’의 개념은 개인 각자의 내밀한 깊이이자 관계맺음이며 타케루 아마노의 비너스가 우리에게 심어주는 환상인 것이다. 앤디워홀의 색색의 마릴린 먼로의 초상이 매스 미디어의 역할과 기능과 방식을 빌려 소비적인 예술로 시각예술의 거대한 흐름을 뒤집어 놓았음에도 여전히 전통적 초상화의 구도와 형식을 그대로 간직함으로써 가볍고 넓게 소비되지만 고상한 예술성을 여전히 탐하며 전통적 예술에 대한 흠모를 찍어냈다면, 타케루 아마노의 비너스는 전통적 예술성에 대한 전복의 의지나 거부감 없이 시대와 상황 속에서 세례받은 작가 개인의 내밀한 아이콘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예술이 시대가 만들어 낸 거대한 담론에 대한 감각적 인지와 예술가적 통찰력과 사유로 인류학적인 거시안적 이야기를 작업을 통해 풀어내는 것이라면, 서구에서 발생한 팝아트가 번져 일본에서 네오 팝으로 로컬적 특수성을 담고 생성되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금의 현대가 담긴 네오 팝은 일본을 오롯이 담고 있는 일본만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일 것이다. 불안한 자연환경과 1945년 일본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가 방어선이 무너짐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세기말과 종말론적 사상이 생명의 덧없음과 애수미哀愁美인-일본의 네오 팝 아트의 첫 세대인 나라 요시토모와 같은-나르시시즘과 향수로, 공동체의 풍요과 번영의 원천을 성性으로 간주하기에 관능적인 애로티시즘으로, 엄중한 위계질서와 ‘와’(和:균형)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일탈을 불허하므로 괴기스러움과 우수꽝스러움으로, 충과 예禮을 위한 죽음이 아름다운 미학으로,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후 잔혹했던 경제불황은 일본이 지켜온 가치에 대한 허무함이 귀여운 소녀스러움으로 찬미하며 승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향적으로 파고들어 깊어질수록 간결해지고 두려움이 커질수록 귀여워진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관계와 깊이 파고드는 일종의 전문성은 내향적 깊이만큼 타인에게 설득적이지도 않고 호소하지 않는듯 보인다. 팬덤(추앙)의 본능, 과몰입과 디깅digging, 멀티 페르소나, 실존적 불안(일본특유)에서 기인한 오타쿠 문화, 개인화, 판타지, 귀여움, 욕망 등은 일본의 네오 팝이 가진 위용일 것이다.

예술이 역사 속 선두에 있으며 맥락을 만드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위엄이라면, 네오 팝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듯 싶다. 예술은 전인류가 공감하고 통감하며 소통될 수 있는 당대 작가의 특유한 조형 언어로 생산되는 시대와 역사의 산물이라는 전제에서는 물론 예외일 수는 없으나 네오 팝 아티스트로서의 타케루 아마노의 작업의 가장 강력한 예술적 설득력은 보편적 가치 추구가 아닌 ‘지금, 현재, 여기, 나’에 있다. 타게루의 ‘귀여운 비너스’는 절대적 미의 상징성을 벗었고, ‘모노物派’ 즉 대상과 나와의 관계에 집중하며 나로 비롯된 ‘팬덤’과 ‘환상’이 만들어낸 우상(아이콘)인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내가 비너스를 여신의 신전에 모셔두는 한 나만의 비너스는 나의 상상 그 이상으로 늘 귀여울 것이며 한결같이 그 곳에서 날 기다릴 것이다.

여전히 타게루의 작품은 빠르게 소화되고 소비된다. 수많은 비너스들이 세로로 동그랗게 뜬 눈과 꽉 다문 일자에 가까운 입모양의 일률천편적 똑같은 표정으로, 그러나 각각 수 많은 다양한 포즈로 귀엽고 요염하게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단 하나의 태양이 내리쬐는 듯 한 아우라를 지닌 비너스는 타게루 아마노에 의해 존재하는 모든 여성이 비너스로 탄생되며, 중요한 것은 비너스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되묻는 과정에서 존재할 것이다. 타케루 아마노의 비너스 팬덤은 각각의 지역에서 뿌리내려 생장하며 수줍지만 깊은 내향적 디깅으로 파고들 것이며 빠르게 소비될 것이다.

 

고연수(미술평론)

 

Venus, acrylic on canvas, 2023, 130x130

GALLERY MARK

3, Sapyeong-daero 20-gil, Seocho-gu, Seoul, Korea

T. 82 2 541 1311
F. 82 2 541 1317
Info@gallerymark.net

Monday - Saturday ( 10:00am - 6:00 p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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